견적서에는 대개 한 줄입니다. 인원 몇 명, 월 얼마. 그 한 줄 안에 임금이 얼마고 관리비가 얼마인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발주하는 쪽도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총액이 낮으면 좋은 견적이었으니까요.
2027년 1월 1일부터 그 한 줄이 열립니다. 근로기준법에 제44조의4가 새로 생겼습니다. 이름은 '도급 사업에서 임금비용의 구분지급'입니다.
1. 조문이 요구하는 것 — 다섯 단계
법 조문은 딱딱하니 순서대로 풀어보겠습니다. 도급인이 해야 할 일은 다섯 가지입니다.
- 1임금 몫을 따로 떼어낸다도급금액 중 수급인이 자기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에 해당하는 비용 — 법은 이를 '임금비용'이라 부릅니다 — 을 구분합니다.
- 2매달 지급한다공사 진척에 맞춰 뭉텅이로 주는 방식이 아니라, 임금비용은 매월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매달 나가기 때문입니다.
- 3또는 지정 금융기관에 예치한다고용노동부장관이 지정하는 금융기관에 임금비용을 예치하면 수급인에게 지급한 것으로 봅니다(제3항). 전용 계좌로 흐름을 묶는 장치입니다.
- 4전월 임금 지급 여부를 확인한다도급인은 수급인이 전월에 근로자에게 임금을 실제로 지급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수급인은 전월 임금 지급내역 등 고용노동부령이 정하는 자료를, 도급인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제출해야 합니다(제4항). 임금비용을 처음 지급하는 달의 전월은 확인 대상에서 빠집니다.
- 5지급되지 않았으면 통보한다확인 결과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면, 도급인은 그 사실을 고용노동부장관에게 통보해야 합니다(제5항). 알고도 넘어가는 선택지는 조문에 없습니다.
그리고 수급인 쪽에는 한 줄이 걸립니다. 받은 임금비용을 근로자 임금 지급 이외의 용도로 쓰면 안 된다(제6항).
이 제도의 무게중심은 돈을 나누는 데 있지 않습니다. 도급인에게 확인 의무와 통보 의무를 지운 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원청은 "우리는 도급비를 다 줬다"고 말하면 끝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그 돈이 근로자에게 임금으로 도착했는지까지 매달 들여다봐야 합니다. 원청의 시야에 하청 근로자의 급여일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확인하지 않은 것도, 확인하고 통보하지 않은 것도 과태료 대상입니다.
2. 누가 대상인가 — 공공만이 아니다
조문 제1항은 대상 도급인을 여섯 개 호로 나열합니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사·지방공단,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여기까지가 다섯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호가 이렇습니다.
“그 밖에 제1호부터 제5호까지에 해당하지 않는 도급인”
민간이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앞머리에 조건이 붙습니다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 금액 규모 및 기간에 해당하는 사업을 도급하는 경우". 그러니까 누가 대상인지는 법이 넓게 열어두고, 어디까지 적용할지는 시행령이 정합니다.
2026년 8월 24일 기준으로 그 시행령은 아직 공포된 것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업종을 어디까지 넣을지, 금액 하한을 얼마로 둘지, 계약 기간을 얼마로 볼지 — 세 개의 숫자가 이 제도의 사정거리를 결정합니다. 도급을 주고받는 회사라면 2026년 하반기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문서입니다.
제재도 양쪽에 함께 붙었습니다.
과태료의 무게가 다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급인 쪽은 받은 임금비용을 빼돌린 경우 — 근로자의 임금을 직접 건드린 행위입니다. 도급인 쪽은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경우입니다. 행위의 성격이 다르니 금액도 다릅니다.
다만 실무에서 더 자주 문제가 될 쪽은 아마 뒤일 겁니다. 빼돌리는 일은 드물지만, 매달 확인하고 기록을 남기는 일은 매달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열두 달 가운데 한 달만 빠뜨려도 그것은 미이행입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칩니다. 같은 개정 법률로 임금체불의 법정형이 3년 이하 징역·3천만 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5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올라갑니다(제107조 개정, 2026-10-08 시행). 임금을 둘러싼 제재 전체가 한 단계씩 올라간 개정이었습니다.
이 규정은 시행일 이후 새로 체결되는 도급계약부터 적용됩니다. 2026년 12월에 맺어 2027년 내내 굴러가는 계약은 곧바로 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내년치 계약이 이 제도의 첫 대상이 됩니다. 준비의 마감일은 2027년 1월이 아니라, 다음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입니다.
3. 이미 시작된 변화 — 100일의 기록
법이 하나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2026년 3월 10일에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됐습니다.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시행 100일이 지난 시점에 고용노동부가 집계를 내놨습니다.
숫자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봅니다. 시행 첫 달인 3월에 363개소가 몰렸고, 4월에는 42개소, 5월에는 23개소가 더해지는 데 그쳤습니다. 우려하던 '교섭 쓰나미'는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것이 쌓이고 있습니다. 판정입니다. 노동위원회 절차가 진행된 원청 141개소 가운데 103개소가 사용자성을 인정받았고, 그중 54개소가 판단을 받아들여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교섭요구를 받은 439개소 중 민간이 249개소로 56.7%, 공공이 190개소로 43.3%였습니다. 이 제도가 공공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서 이미 드러납니다.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되는 것과, 근로기준법상 직접고용 의무를 지는 것은 다릅니다. 앞의 것은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가"의 문제이고, 뒤의 것은 "직접 고용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두 제도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해서 같은 의무는 아닙니다. 다만 두 제도가 공통으로 쓰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 실질입니다. 계약서에 무엇이라 적었는지가 아니라, 현장에서 누가 작업 방법을 정하고 누가 사람을 배치하는지를 봅니다.
4. 발주의 언어가 바뀐다
공공부문은 한발 앞서 움직였습니다. 2026년 4월 16일 정부는 '공공부문 도급 운영 개선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반용역 낙찰하한율을 87.995%에서 89.995%로 올리고(5월 적용), 2차 도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며(신기술·전문성이 필요하거나 일시·간헐 업무인 경우만 예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급계약 기간을 2년 이상으로 보장하고 근로계약 기간도 여기에 맞추며, 노무비는 용역계약 산출내역서에 구분해 명시·공개하고 임금과 퇴직급여 충당 외의 용도로 쓰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세 갈래를 겹쳐 보면 방향은 하나로 모입니다.
| 지금까지 | 앞으로 | |---|---| | 총액이 낮은 견적이 좋은 견적 | 임금 몫이 분리된 견적이 통과되는 견적 | | "도급비는 다 지급했다" | "임금이 지급된 것을 확인했다" | | 계약서에 적힌 관계 | 현장에서 작동한 실질 | | 몇 명을 구해줄 수 있는가 | 몇 명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
값으로 겨루던 경쟁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값을 낮추는 방식이 좁아진다는 뜻입니다. 임금을 깎아 총액을 맞추는 길, 재하도급으로 관리비를 얹는 길이 하나씩 막힙니다. 남는 경쟁은 운영입니다. 같은 값에 이직률을 낮추고, 결원을 빨리 메우고, 사고 없이 굴리는 능력.
5. 남은 넉 달,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 1견적서를 두 줄로 나눈다임금비용과 그 밖의 비용을 분리해 산출하는 양식을 지금 만들어둡니다. 시행령이 나온 뒤에 시작하면 첫 달 정산부터 어긋납니다. 공공 입찰에 참여한다면 이미 산출내역서에 노무비를 구분해 적어야 합니다.
- 2전월 임금 지급 증빙을 자동으로 만든다제4항이 요구하는 것은 '지급했다는 말'이 아니라 자료입니다. 근태 기록 → 급여 계산 → 이체 내역이 한 흐름으로 이어져 있으면 매달 버튼 하나로 끝나고, 흩어져 있으면 매달 사람이 며칠을 씁니다.
- 3재하도급 구조를 세어본다제2항은 도급이 한 차례 이상 이루어진 경우 직상 수급인과 하수급인을 각각 도급인·수급인으로 봅니다. 단계마다 같은 의무가 붙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몇 단계인지부터 확인합니다.
- 4계약서 조항을 미리 고친다임금비용 구분지급, 자료 제출, 확인 불응 시의 조치를 계약서에 넣습니다. 이 제도는 시행일 이후 새로 맺는 계약부터 적용되므로, 지금 협상 중인 내년치 계약이 첫 대상입니다. 서명한 뒤에 조항을 넣으려면 협상력이 없습니다.
넉 달입니다. 다만 진짜 마감은 시행일이 아니라, 다음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입니다. 준비한 회사에는 새 평가표의 가점이 되고, 준비하지 않은 회사에는 매달 돌아오는 확인 의무와 그 뒤에 붙은 과태료가 됩니다.
지금까지 발주는 얼마에 맡겼느냐를 물었습니다. 앞으로는 그 돈이 누구에게 도착했느냐를 묻습니다.
한 줄로 적혀 있던 견적이 두 줄로 나뉩니다. 그 두 번째 줄 — 임금 — 이 제대로 도착했다는 것을 매달 증명할 수 있는 회사가, 다음 시장에서 계약을 가져갑니다. Linkple이 채용부터 근태·급여·증빙까지 하나의 기록으로 잇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증명은 준비된 기록에서만 나옵니다.
출처: 법령=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기준법 제44조의4(본조신설 2026-04-07) 조문 원문 및 법률 제21533호(2026-04-07 공포) 개정문·부칙. 과태료는 개정문상 제116조제1항에 제2호를 신설(수급인·1천만 원 이하)하고 같은 조 제2항제2호에 "제44조의4제1항ㆍ제4항ㆍ제5항"을 추가(도급인·500만 원 이하)하는 형태이며, 부칙 제1조에 따라 제44조의4·제116조제1항제2호·제116조제2항제2호가 모두 2027-01-01 시행입니다. 부칙 제2조(적용례)는 "제44조의4의 개정규정은 같은 개정규정 시행 이후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정합니다. 그 밖의 개정규정(제107조 법정형 상향 포함)은 2026-10-08 시행. 적용 업종·금액 규모·기간은 대통령령에, 구분지급·확인·통보의 방법과 절차는 고용노동부령에 위임돼 있으며 2026-08-24 기준 둘 다 공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공포되면 적용범위가 달라집니다. 노동조합법 시행 100일 집계=고용노동부 보도참고자료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100일, 어렵게 첫발 뗀 원·하청 상생·대화 조금씩 진전」(2026-06-22 배포, 6월 19일 기준). 공공부문 도급 운영 개선방안=관계부처 합동 발표(2026-04-16), 낙찰하한율 수치는 조달 관련 보도 기준. 이 글은 법률 자문이 아니며, 개별 계약 적용 여부는 시행령·시행규칙 확정 후 전문가 검토가 필요합니다.